가부키와 메구 2- 다테 소동과 미사 장자 –

메구로에는, 가부키의 소재가 된 사건에 인연이 깊은 장소가 있습니다.이번은, 에도시대 초기에 일어난 “다테 소동”에 관련되는 이야기입니다.
도큐 전철 도요코 선 나카 메구로 역에서 야마테 도리를 남쪽으로 250미터 나아가고 나카 메구로 입체 교차의 신호를 넘어 다시 100미터 정도 가면”정각사(초등이 추첨)“이 있습니다.
정각사는 미사와 하츠코의 아버지 어머니 보리사입니다.미사와 하츠네는 센다이 번 제삼대 번주 다테 쓰나 무네(멋개인 가슴)의 후궁( 따랐다=본처 이외의 아내)이며, 넷째대 번주 다테 쓰나무라의 생모입니다.절 안에는 그녀의 무덤(도쿄도 문화재·옛터 지정)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부모의 묘도 있습니다.

제삼대 번주 다테 쓰나 무네가 은거하면서 미사와 하츠네가 낳은 카메 치요(후의 다테 쓰나 무라)은 불과 2세로 센다이 지방 영주가 되었습니다.이 어린 선주를 둘러싸고, 집 소동 “다테 소동”이 일어나요.[다테 소동]은 가부키의 [가라선대하기] 외에도 인형정유리, 문악, 소설 등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미사와 하츠코는 가부키[가라선다이하기]등의 주요 등장 인물인 “마사오카(政岡)” 외에, [아사오카의 국] 등, 수많은 창작물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부키(歌舞伎) ‘가라선대하기(歌羅先代く)’에서는 시대가 가마쿠라 시대로 바뀌었습니다유모·마사오카는, 어린 츠루치요를 지키기 위해, 우리 아이·센마츠의 희생을 참아내면서까지 충의를 관철합니다.적대하는 여성들 8시오와 사카에고전의 증오스러움이나, 번정의 탈취를 도모하는 가신·니기 탄정의 기괴함, 호소카와 카츠모토의 상쾌한 재판 등, 다채로운 등장 인물들이 북돋우는 색채가 풍부한 명작입니다.

정각사 경내에는 가부키의 명배우인 로쿠다이메노우에우메유키의 제자 오가미우메토모가 연기한 마사오카를 바탕으로 세운 그녀의 동상이 있습니다.또, 어린 그대로 선주가 된 자식을 생각해, 그 몸의 안전을 염원했다고 하는 귀자 모신상이 안치되어 있는 것 외에 손을 맞추어 기도하는 미사와 첫자의 모습을 나타낸 목상도 납입되고 있습니다.
이 어머니의 한결같은 사랑은 이루어졌으며, 집안 싸움 같은 것들도 이겨낸 다테 쓰나무라는 명군이라 불릴 만큼 번주가 되었습니다.그의 미사와 하츠코에 대한 친애의 정도도 강해, 에도체재중 자주 어머니의 곁을 찾았다고 합니다.
미사와 초자의 귀의로 융성의 기반을 닦은 정각사에는 그녀의 사후 유훈으로 저택 건물이 봉납되었으며 그 부재로 절의 제당이 세워졌습니다.난간이나 널마루, 천장판 등은 지금도 본당이나 절무소 등에서 현존하여, 옛 모습을 그리실 수 있습니다.
증상사 앞의 미나토구 관공서 정면 현관의 옆에는, “아사오카 밥 짓는 샘”이 있습니다.근처에는 영주 등 증상사를 참배한 기회에 사용된 센다이 번 다테가의 준비실이 있었다고 여겨지고 어려서 네대째인 우리 아이(거북 치요)을 독살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겠다며, 아사오카의 국(미사와 하츠네)가 이 우물의 물을 길어 조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쇼와 53년(1978년), 미나토구청 신청사 건설 때 옛 청사 안마당에 있던 것이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습니다.
미사와 하츠네는 영주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해내다테 쓰나 무라의 모습을 지켜보고 47세로 그 생애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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